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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영]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들리는 내 주변의 목소리
이주현 사진 손홍주 2014-11-12

<카트> 부지영 감독

<카트>는 부지영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이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랜드 홈에버 파업, 홍익대 청소노동자 파업 등을 모티브 삼은 <카트>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담는다. 인터뷰 중 부지영 감독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더 또랑또랑하게 만들어 답한 순간이 있었다. 정규직으로서 어떻게든 자기 자리만 보전하려는 최 과장(이승준)이나 자신들의 불편함이 먼저인 마트의 고객이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얘기했을 때였다. 부지영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잘 몰라서 그렇다. 그들은 내 돈으로 마트에서 소비하는 거니 응당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트 직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의 폭을 넓히는 영화, <카트>가 그런 영화가 되면 좋겠다.” 부지영 감독의 이 말에 <카트>의 진심이 담겨 있다. <카트>를 보고서, 카트를 방패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제작두레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극장을 꽉 채웠더라. 화장실에서 그들의 생생한 영화평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거 아닌가? “(도)경수 진짜 많이 맞았어.” (웃음)

-맞다. ‘우리 오빠 때릴 데가 어딨다고’, ‘개봉하면 또 봐야지’ 이 두 가지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영화가 EXO의 디오(도경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영화와 아이돌 배우 모두 상생한 것 같고. =제작사인 명필름이 <건축학개론> 때 수지를 캐스팅하면서 좋은 선례를 남긴 적이 있는 데다가 배우 보는 눈도 좋아서 자신 있게 아이돌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물론 첫 만남에서 도경수씨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좋기도 했다. 눈빛도 좋았고 리딩도 느낌 있게 했다. 디렉션을 할 때마다 순발력 있게 자기 나름으로 해석해 연기하는 모습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니 캐스팅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명필름에선 5년쯤 전부터 <카트>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감독님이 합류한 시점은 언제인가. =2012년 7월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심재명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나리오를 하나 읽어봐 달라고. 그 당시 난 두 번째 장편에 목말라 있었고 준비하던 시나리오가 잘 안 되던 차였다. 사실 내게 시나리오 보내주는 제작자가 별로 없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용기 있게 이런 소재를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싶어 놀라웠다.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예전부터 무척 하고 싶기도 했고, 연출을 할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심재명 대표와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 =여성 영화인 모임에서 인사하는 정도?

-함께 영화하자는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나. =전혀. <카트>로 만났을 때 내 첫 영화는 별로였다고 하셨다. 그건 그냥 보통이었는데 중편 <산정호수의 맛>이 재밌어서, 그 영화 보고 나를 떠올렸다고 하시더라.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인권영화 <니마>를 만들 때 몽골 이주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 다른 감독들은 인권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찾아보기도 했는데 영화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더라. 학습과 계몽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도 있고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영화도 있고. 당시 <니마>라는 영화가 어떤 지점에 위치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의 시나리오가 상업적인 요소는 더 분명했던 것 같다. 코믹 캐릭터도 확실했고. 각색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숙제였다.

-<니마>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산정호수의 맛>에 비하면 <카트>는 주제나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분명하다.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많이 했나. =이전 영화들이 흐릿하긴 하지. (웃음) 당연히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인 영화인 게 맞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잘 담으려고 했고. 줄타기를 잘해야 했다. 영화를 찍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카트>에는 유명 배우들이 나온다. 그 배우들을 보조하는 배우들은 연극판의 낯선 배우들이다. 유명 배우들이 캐릭터에 동화되는 과정이 결국은 연극배우들과 어우러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천우희 같은 배우들이 기존의 이미지를 다 지우고 뒤에 서 있는 연극배우들과 비슷하게 보인다면 성공이겠구나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보고.

-해고 통지를 받은 ‘더 마트’ 계약직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마트를 점거해 밤을 새우던 날, 그들이 한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카트>는 특정 사건을 얘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라고 얘기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결국 이들의 얼굴 하나하나, 이야기 하나하나를 보여주고 들려주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몇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함께 파업했던 분들의 목소리, 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 사실 그 장면에서 더 많은 캐릭터의 이야기를 찍었는데 영화에 다 담을 수 없었다. 6명 정도는 편집돼서 잘렸다.

-선희(염정아)와 혜미(문정희)의 관계는 자매처럼도 보인다. 영화에서 혜미가 선희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두번 나오는데 ‘언니’라는 단어가 그렇게 찡한 말인 줄 몰랐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역시 자매 이야기였고, <니마>는 한국 여성과 몽골 여성이 서서히 유대를 쌓는 이야기였다. 감독님의 영화에선 늘 ‘자매애’가 부각된다. =성장 과정의 영향인 것 같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 안에서 자랐고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항상 여자가 다수인 집단에 속해 있었다. <카트> 속 여성들의 관계는 좀더 확장시키면 유사 가족으로도 볼 수 있다. 마트를 점거해 함께 밥먹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가족적인 무엇 같았다. 시스터후드(sisterhood)뿐만 아니라 확장된 가족의 모습도 내겐 굉장히 중요하다. 여성들이 유대를 맺는 게 좋고, 그 모습이 보고 싶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화로 만드는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런 게 잘 안 되는 사람이다. 영화가 일종의 내 판타지일 수 있다. 나는 그릇이 크지 못해 사람들과 나누고 살지 못하지만 내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연대하는 여자들에 대한 감독님의 판타지는 따뜻한 연대의 경험, 유대의 경험에서 비롯된 건가. =내 DNA를 설명하지 못하듯 내 정서적 DNA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이게 어디서 왔는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봐도 결국 제주도에서 15년 동안 지낸 것, 그것밖에 없다. 아버지가 군인이셨는데, 내가 아주 어릴 때 부대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뒤 아빠, 엄마의 고향인 제주도에 네살 때 정착했고, 서울로 대학 유학 오기 전까지 쭉 제주도에 살았다. 가족이 전부 여자였다. 엄마 친구도 여자, 외할머니 친구도 여자, 늘 보는 사람들이 여자였다. (웃음) 그게 식상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 환경이 너무 익숙해서 가끔 남자 친척이 며칠씩 우리 집에서 묵는 날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보니 계통이란 게 보이더라. 양육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외할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때 확실히 알겠더라. 그분들이 내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이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보게 됐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외할머니는 뭐든 다 나눠야만 하는 분이셨다. 어머니도 그런 분이고. 시장에 가면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비닐봉지 펴놓고 나물 파는 할머니들 있잖나. 어머니는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걸 보고 자란 환경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가 곧 정규직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우리 다음 세대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를 확장한다.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를 분명히 해줄 필요가 있었다. 캐릭터는 단순히 성격이 아니다. 거창한 의미를 담으려 했다기보다, 인물이 처한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가령 순례(김영애)는 오랫동안 빗자루를 잡아온 사람이고, 똑똑하진 않지만 용감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미진(천우희)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데 항상 면접에서 떨어진다. 그렇다고 놀 순 없으니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지만 여기가 내 일터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하는 조금은 자기중심적인 20대다. 태영(도경수)은 침잠형의 10대 소년인데, 자신의 현실이 다른 애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에 뭔가 눌려 있다. 그러면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월급을 떼인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의 처지와 사회적 관계가 영화에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트를 지어 마트라는 공간을 구현했다. =처음엔 헌팅을 열심히 다녔다. 혹시라도 공간을 빌려줄 마트가 있을지 모른다 싶어서. 지방의 마트 위주로 알아봤는데 마트의 하루 매출액이 우리의 하루 대여비를 훨씬 뛰어넘더라. 그렇다고 도둑 촬영을 하거나 마트가 문 닫은 시간에만 촬영하자니 안정된 스케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세트를 지으려고 해도 공간이 워낙 넓어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세트장에선 찍을 수가 없었다. 큰 공장이나 창고를 찾아서 거기다 세트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제작부 막내가 용인의 한 창고를 찾았다. 창고의 외관도 마트스러워 내부와 외부의 구조가 어느 정도 연결될 수 있었다. 문제는, 창고 주변이 산이었다는 거다. 산속에 있는 마트는 없으니 마트 외부 배경을 모두 CG로 만들어야 했다. 엄청나게 큰 블루스크린을 계속 옮겨가며 촬영했다. 제작팀, 촬영팀, 미술팀, CG팀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영화 속 마트는 실제 마트보다 더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마트 천장의 조명, 계산대와 선반들이 빽빽하게 열 맞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공간이 조금은 답답하게 보이도록 프로덕션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 계산대와 계산대 사이 간격도 실제 마트의 공간 사이즈보다 살짝 좁았던 것 같다. 계산대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화면에 잡혔으면 했다. 유니폼 색도, 빨강과 노랑은 실제 다른 마트에서 쓰이는 색이라 제했다. 그래서 파란색으로 정했는데, 채도를 뺐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우울해 보이는 느낌도 있고. 대신 파업 때 입는 티셔츠는 그와는 반대되게 여성스러운 색, 난색 계통으로 갔다.

-남편인 김우형 촬영감독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는데 부담스럽진 않았나. =시작할 땐 부담 없이 결정했다. 우선 이 영화를 잘 이해하고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다. 알다시피 김우형 촬영감독은 학교 다닐 때 투쟁 현장을 많이 돌아다녔던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 덕을 좀 보고 싶었다. 첫 번째 것은 잘 실현해줬는데 남편 덕은…. (웃음) 이 양반이 현장에서 말이 없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분은 현장이 전쟁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고 노닥거리거나 말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남편한테 운전 연습 받으면 안 된다고 하잖나. 그거랑 비슷한 것 같다. (웃음)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아직은 없다.

-만들고 싶은 영화는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여자들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재밌게 살고들 있을까, 잘 살고들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 남자들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고. 늘 똑같은 얘기만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를 증명하고 사는 이야기, 그게 항상 궁금하다.

인터뷰는 아침 일찍 시작됐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쭉 매체 인터뷰를 해야 한다기에 그럼 오전 일찍 만나기로 했다. 9시30분, 카페에 도착했다. 부지영 감독 앞에는 케이크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동네에서 케이크 두 조각을 사왔다. 아침을 거르고 나올 상대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사이좋게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한 시간 반을 꽉 채워 이야기를 나눴다. 부지영 감독은 스스로 나누는 삶에 익숙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사소한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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