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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프리드킨 (William Friedkin)

1935-08-29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4

/

네티즌6.3

기본정보

  • 다른 이름윌리엄 프레드킨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5-08-29
  • 성별

소개

대표작 <엑소시스트> <마법> <프렌치 커넥션> <엑소시스트> <보스톤 특급사건> <알 파치노의 광란자> <세기의 거래> <늑대의 거리> <람페이지> <가디언> <샤킬오닐의 NBA 챔프> <제이드>

윌리엄 프리드킨이 <엑소시스트 The Exorcist>(1973)를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34살이었다. 그보다 2년 전에 프리드킨은 <프렌치 커넥션 The French Connection>(1971)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더불어 젊은 나이에 프리드킨은 스탠리 큐브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잘 나가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70년대 내내 그랬다. 평론가 제임스 모나코는 프리드킨을 가리켜 ‘빌리 더 키드’라고 불렀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보다 기가 막히게 총을 빨리 뽑는 서부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처럼 프리드킨은 어떤 소재라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로 뽑아내는 전가의 보도를 지닌 남자처럼 보였다.

프리드킨의 경력을 보면 그게 이해가 될 것이다. 3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프리드킨은 십대 시절부터 시카고의 방송사에서 일한데다 17살에 이미 생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프리드킨은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고 20살 때는 이미 풋내기가 아니었다. 1시간짜리 TV 다큐멘터리 <사람들 대 폴 크럼프>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2천편 이상의 텔레비전 쇼를 연출한 다음 기교에 어느 정도 정통하고 나자 프리드킨은 영화로 전업했다.

66년 그는 ‘소니와 셰어’의 남자 보컬 소니 보노를 만났는데 소니는 자기들 얘기를 영화로 찍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프리드킨은 소니와 셰어를 출연시켜 첫번째 장편 극영화 <좋은 시절 Good Times>(1967)을 찍었다. <좋은 시절>은 많은 사람이 본 영화가 아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프리드킨이 얼마나 카메라를 잘 다루는지 놀랐다. 프리드킨은 그뒤로 몇편의 저예산 장편영화를 더 찍었다.

그저 쓸 만한 재주가 있는 텔레비전 감독 정도 아니냐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무렵 프리드킨은 세인을 놀라게 한 영화 <프렌치 커넥션>을 만들어 그의 전성기를 펼쳤다. 소니 그로소와 에디 에간이라는 두 형사가 마약 밀매집단의 우두머리를 추적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우선 뉴욕 도시의 거리를 잡아낸 촬영이 기가 막혔다.

거의 기록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데 프리드킨은 뉴욕의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화면에 옮겨놓았다. 마약 집단의 두목이 우아하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그를 감시하는 형사는 손을 불어가며 그 레스토랑 근처의 길가에서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는 식의 대비 같은 것이 특히 뛰어났다. 파시스트적인 형사상을 찬양하는 보수적인 내용상의 함의를 따로 떼어놓으면 <프렌치 커넥션>의 스타일은 보는 사람이 숨가쁠 정도로 정교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자동차 추적 장면이며 피터 예이츠의 <불리트>에 이어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자동차 추적장면으로 평가받았다.

<엑소시스트> 역시 소재가 어떤 것이든 서스펜스와 액션이 가득한 영화로 만드는 프리드킨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악마주의를 다룬 대부분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운동의 전면적인 확장에서 비롯된 60년대 이후 미국 보수사회의 위기감을 얼마간 반영하고 있지만 문제는 서스펜스를 조작하는 프리드킨의 방식이었다.

그는 히치콕처럼 무엇보다는 어떻게에 치중하는 감독이었고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엑소시스트>의 서스펜스 축적 방식은 그가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한수 배운 것이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를 리메이크한 <마법 Sorcerer>(1977)에는 생전 보지 못한 뛰어난 구도의 화면이 많다.

박진감이 넘치고 뭔가 영감에 가득 찬 인상을 주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럼 프리드킨에게도 기교중독증의 혐의가 다분히 있었다.

<알 파치노의 광란자 Crusing>(1980)에서 게이들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파헤쳐 충격을 줬던 프리드킨은 80년대에도 <늑대의 거리 To Live and Die in L.A.>(1985) <람페이지 Rampage>(1987) 같은 수작을 찍었다.

물론 <가디언 The Guardian>(1990) 같은 태작을 만들기도 했지만 최근작 <제이드 Jade>(1995)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타락한 질서는 그리 변하지 않는다는 자기식의 비판정신과 테크니션의 솜씨를 놓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화관객은 이미 50을 훨씬 넘긴 테크니션 감독이 감당하기에는 취향이 너무 변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프리드킨의 기교는 낡은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프리드킨의 세부묘사는 당할 자가 없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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